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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유학간 아이들 숲과 텃밭이 키운 함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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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602회 작성일 21-02-24 16:0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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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ㆍ농가서 생활하며 생태교육 

 게임ㆍ스마트폰 중독 도시 초등생들 

 밭일ㆍ놀이에 몰입하며 적극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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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생 뒤섞여 놀며 배려심 늘어 

 ‘공부 포기하는 것 아니냐’ 우려에 

 “지역 중학교 전교 1등 우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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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비 月 40만~80만원 수준 

 임실 대리초 6명이 유학생 

 울주 상북초 소호분교는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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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위기 시골학교 살리기로 시작 

 반응 좋아 부모와 귀촌하기도 

 농ㆍ산ㆍ어촌 유학생 7년 만에 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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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 떨어져 생활’ 우려에 

 “도시서 부모와 살다 문제 생긴 경우 

 농촌 생활이 숨통 트여줄 것” 반박 

도시를 떠난 아이들이 산골에서 자란다. 이들을 키우는 것은 햇볕, 비, 바람, 어른 등 온 마을이다. 9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소호분교 앞 냇가에서 물속 곤충을 관찰한 뒤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하다. 학생은 저마다 관찰한 곤충 유충을 담은 뜰채와 접시를, 마을 어른은 저녁 찬을 손에 들었다. 울주=홍인기 기자

호미질에 열중한 소년의 손과 눈이 반짝 빛났다. “주현(12ㆍ가명)이도 뭔가에 저토록 몰입할 수 있는 친구였구나.” 마을 어른들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게임에 빠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그였다. 장소와 상황에 불문하고 누구를 만나도 “거절한다!”는 게임 속 대사만 주문처럼 반복했고, 식사 시간엔 밥상에 드러눕는 기행도 선보였다. 밤이면 어른들이 숨겨놓은 게임기를 기어코 찾아내 벌건 눈으로 화면에 빠져들고, 낮이면 꾸벅꾸벅 조느라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이 도시 아이를 바꾼 건 수개월의 산골 마을 생활이었다. 물자, 학원, 친구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산촌에서 스스로 놀 거리, 할 일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덕일까. 숲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살아서일까. 텃밭의 주인이 돼 채소를 심고 가꾸고 거둬본 덕일까. 어른들도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변화였다.

“처음엔 ‘우리 센터에서 이 친구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해 어머니가 걱정하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유독 밭일을 하면 무섭게 몰입하고, 고요해지는데 참 신기하더라고요.“ (김정화(49) 소호마을산촌유학센터 생활지도교사)

 촌에서 배우며 놀며 자라는 아이들 

산골 생활을 자처한 도시 아이들이 있다. 이른바 농ㆍ산ㆍ어촌 유학생이다. 도시 아이들이 지역 학교로 전학해 6개월 이상 기숙사(생활관)나 농가에서 먹고 잔다. 마을 주민들이나 유학센터 교사들이 꾸리는 생태교육을 받고, 방과 후에는 밭을 매고, 숲에서 뛰논다. 유학비는 월 40만~80만원 수준.

시작은 폐교위기를 맞은 지역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마을주민, 교사 등이 팔을 걷고 학생 유치에 나섰던 지역 살리기 운동 성격이 강했다. 곳곳에서 사단법인, 교사모임 등이 자발적으로 학생을 모집하던 것이 2010년부터는 농림축산식품부 시범사업으로, 2013년부터는 지자체 보조사업으로 본격 추진됐다. 우선 목표는 농촌 소규모 학교 유지 및 공교육 활성화.

그런데 막상 더 반긴 이는 생활해 본 아이와 부모들이었다. 농촌 살리기는 지역의 관심일 뿐, 부모들의 최우선 목표는 ‘내 아이의 행복’일 터였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지내는 문제부터 걸림돌이 제법 되는데도 적잖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고 확신한다. 도시에 비하면 결핍투성이인 촌에서 아이들이 더 잘 먹고, 잘 크고, 잘 웃게 됐다는 것이다.

2010년 전국 3곳 교육시설 57명에 불과했던 농ㆍ산ㆍ어촌 유학생 규모는 지난해 전국 18곳 260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웃게 했을까.

물속 곤충 관찰에 나선 아이들은 강도래, 무늬하루살이 등의 유충이 다칠까 조심조심 붓질을 하며 고사리 손을 움직였다. 울주=홍인기 기자.

9일 찾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상북초 소호분교 앞 냇가에서는 소호산촌유학센터의 임형우(48) 생활지도교사와 학생들의 ‘숲 학교’ 수업이 한창이었다. 소호마을은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 신불산, 문복산에 인접한 고헌산과 백운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500㎙ 산골 마을로 30가구 정도가 산다. 분교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한 유학센터는 유학생들의 생활을 살피고 교육 활동을 기획하는 곳으로 소호분교의 방과 후 수업 중 ‘숲 학교’, ‘마을 학교’ 등을 맡는다. 이날은 ▦숲 탐방 ▦개구리, 나무, 열매, 꽃 등 숲속 친구와 교감 나누기 ▦밧줄 놀이 등으로 이어진 숲 학교 수업의 마지막 회차, ‘물속 곤충 관찰하기’ 시간이다.

아이들이 연신 “삼촌”을 불렀다. 저마다 손에 든 뜰채를 자랑하려는 참이다. 마을 어른이자, 학부모이자, 태권도 사범이기도 한 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임두령 삼촌’으로 통한다.

“삼촌! 삼촌! 제 것 좀 봐요!”

“와! 이건 무늬하루살이 유충이야. 흙 속에서 사는 애들은 어떻게 생겼다 했노? 흙 속에 사는 애들은 깊이 파고 들어가기 위해 몸이 뾰족하고 길쭉하고 날씬하다고 했지.”

“삼촌, 이건 뭐예요?”

“오! 잘 찾았네. 얘는 강도래야. 돌바닥에 붙은 강도래는 납작하고 발톱이 두 개, 하루살이는 발톱이 한 개라고 했지?”

청정 1급수에 산다는 강도래 유충까지 찾아내자 아이들 표정이 우쭐해졌다. “아악, 발 시려요!” “어디 있어요?” “안 보여요!” 등의 외마디 비명과 푸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교생 31명, 총 5학급의 소호분교 학생 중 7명이 유학생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총 10명이 등록된 유학센터 학생들의 출신지는 서울, 인천, 경북, 울산, 부산 등으로 저마다 다르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나머지 마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아침저녁에는 2~4명씩 나뉘어 마을 주민의 집에서 생활한다. 이들 주민이 유학 기간 아이들의 ‘농가 부모’가 되는 셈이다. 현재 아이들이 지내는 농가는 유학센터 교사들의 집으로, 모두 수년 전 이 마을로 귀촌했다. 생협 활동가, 초등교사, 태권도 사범 등으로 전직은 다 달라도 아이들에게는 달코미 이모, 호미 이모, 임두령 삼촌 등 모두 이모ㆍ삼촌으로 불린다.

농가에서는 이모, 삼촌 및 이들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센터에서는 농사, 어린이 협동조합, 계절별 생태놀이, 어린이밴드, 어린이풍물, 합창단, 자치회의, 치유의 숲, 스스로 여행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어른들도 농가 모임, 학부모 워크숍, 학부모 만남의 날 등을 통해 수시로 마주하며 교육방향 등을 논의한다.

소호산촌유학센터 김정화 생활지도교사와 아이들이 학교 앞 냇가에서 채집한 곤충 유충을 관찰하고 있다. 울주=홍인기 기자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곤충을 채집할 동안 저학년은 다음학기 '숲학교'와 '마을학교' 수업 등에서 활용할 밧줄 매듭 묶는 법을 배웠다. 울주=홍인기 기자

 때론 결핍이 성장을 이끈다 

아무리 숲과 물이 좋다지만, 전교생이 31명에 가장 적은 1학년은 3명에 불과한 시골 분교로 선뜻 아이를 보내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친구나 사귈 수 있을까” 망설일 부모들이 있지만 달코미 이모 김정화(49) 생활지도교사는 바로 그 점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다.

“도시에서는 같은 학년끼리 놀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의 전체 수가 적으니 다 같이 놀지 않으면 놀이에 낄 수 없거든요. 애들이 언니 오빠 할 것 없이 섞여 숲에서 뛰고 서로 배워요. 동생을 보살피는 법도 큰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도요. 아이들끼리 물놀이하다 동생들 옷이 젖으면 언니들이 가까운 집에 데려가 옷을 갈아입혀 주고, 어둑해지면 손잡고 집에 바래다 주고요. 요즘 도시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또래 관계죠.”

김씨도 심리상담, 숲 해설 등을 공부하다 반한 소호마을에서 남매를 키웠다. 그는 “아파트 울타리 안에서만 자랄 때는 늘 놀이에 목말라했던 아이들이 입 주변이 얼룩덜룩해질 정도로 오디를 따먹고 숲을 뛰는 모습을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학부모 정영순(40)씨가 1학년 때 시작한 딸 아이(13)의 유학 생활을 계속 지지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저를 따라 몇 번 마을 구경하고 언니, 오빠들과 놀아본 아이가 ‘엄마 나 여기서 학교 다닐래’ 하더라고요. 너무 어린 게 아닌가 고민도 했는데 워낙 적응을 잘했어요. 또래 관계에 대한 고민은 더욱 치열하더라고요. 여기선 내가 불편한 친구랑은 안 놀고 친한 친구랑만 놀 수 없으니까요. 서로 모르는 아이 없이 전 학년이 같이 놀고, 그 안에서 작은 아이를 배려하고 불편한 친구와도 관계 변화를 이끄는 모습이 다 눈에 보여요.” 블로그, 인터넷 카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시로 공유되는 아이의 생활과 수업 내용 등을 살피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 별로 불안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일보- 토요기획 끌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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